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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길고양이의 수난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4-11 12:28:52 ] 클릭: [ ]

앵앵― 찌르륵, 찌르륵―

아츠러운 소리가 또 고막을 훑어댄다. 마치 귀 속에서 모기가 기승을 부리며 날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전류가 살벌하게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는 두통으로 이어져 머리가 빠개질듯 아프고 정신까지 흐리마리해진다.

나는 이명증으로 앓은 지 여러해 된다. 원래 림업작업소의 로동자로 일했었는데 꽤 어깨를 으쓱하며 폼을 잡을 만했다. 매일 산 속을 헤매며 다녔지만 남들이 코를 땅에 틀어박고 고되게 농사를 지을 때 그나마 국가의 ‘봉록’을 타먹으면서 ‘신선놀음’을 했으니 마음이 뿌듯할 수 밖에 없었다. 헌데 사달은 15년전에 안해가 ‘가짜리혼’으로 한국에 나가면서부터 생겼다. 사실 말이 ‘가짜리혼’이지 어느 사내가 생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이상 엄연히 자기 호적에 배우자― ‘안해’로 등록되여있는 녀자를 옆에 눕혀놓고 얌전하게 ‘감상’만 하겠는가? 안해도 거기 생활에 현혹되였는지 아니면 그 쪽 사내에게 흠뻑 빠졌는지 어쩌다 귀국하여도 나한테 곁을 주지 않더니 몇해전부터는 아예 발길을 딱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그 때로부터 나는 술독에 빠져서 살았다. 한끼도 술이 배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발광할 지경이였다. 따라서 성격이 란폭해져 걸핏하면 남들과 다투었는데 사무러운 개 코등이 성할 날이 없듯이 매일과 같이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들군 하였다. 하지만 세상에 술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나는 알콜중독에 걸렸고 나중에는 중풍까지 맞았다. 다행히 제때에 치료하였기에 반신불수는 면했지만 왼쪽 손과 왼쪽 다리가 조금 불편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일년전에 안해가 하나 밖에 없는 딸년마저 한국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나는 결국 양로원으로 오게 되였다. 하지만 퇴직금이 얼마간 나왔기에 살아가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양로원은 외계와 접촉이 단절된 곳이다. 어찌 보면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로쇠해져 운신이 불편한 로인들이나 병이 든 환자 그리고 혈육에게 버림받아 의지가지 할 데 없게 된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모두들 인간세상에서 소외된 티끌 같은 인생들이였다.

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죤을 보고 있었다. 따분하고 적막한 양로원에서 하는 일이란 매일 텔레비죤과 씨름하는 것 뿐이다. 갑자기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빠금히 열려져있는 문틈 사이에 고양이 한마리가 오도카니 서있었다. 그 고양이는 누군가 키우다가 버린 길고양이였는데 매일 양로원에 드나들며 먹다 버린 음식을 훔쳐먹었다. 때로는 주방에까지 란입하여 아수라장을 만드는 바람에 원장이 덫까지 놓았다.

“씨팔, 누구한테서 버림을 받고 우리 양로원에 기여들어와서 살려고 해? 아무리 양로원이래두 그렇지 너까지 돌봐줘야 해? 어디 잡히기만 해봐라.”

원장이 이를 부등부등 갈며 욕하였지만 나는 그 길고양이가 불쌍하여 가끔 먹다 남은 음식을 방에 가지고 와서 감춰두었다가 녀석이 찾아오면 내여주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재미가 들어 매일 식사 때면 내 방으로 찾아왔다. 헌데 오늘 따라 깜박하고 녀석에게 줄 음식을 챙겨오지 못했다. 고양이는 슬픈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뭔가 갈구하고 있었다. 그 눈길이 하도 애절하여 가슴이 찡해났다. 결국 고양이는 나한테서 아무것도 얻어먹지 못하고 비칠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갑자기 텔레비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몸을 쏘파에 비스듬히 기대며 텔레비죤 화면에 눈길을 돌리니 한참 웬 로인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앞에서 새납을 불고 꽹과리를 두드리고 뒤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허리에 흰 띠를 두른 사람들이 종이돈을 뿌리며 관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요즘 들어 지령감이 오늘일가 래일일가 한다던 양로원 원장의 말이 떠올라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령감은 70대 중반의 로인인데 한뉘 땅과 씨름해온 농사군이였다. 그는 고되게 농사를 지어 외동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헌데 그 아들은 성가를 하여 안해와 함께 미국으로 가더니 가끔 돈을 부쳐올 뿐 좀처럼 돌아올념을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에 로친까지 북망산으로 가자 지령감은 양로원으로 옮겨왔다. 인젠 로쇠하여 농사를 지을 힘도 없고 또 혼자서 생활하기 불편하였다. 그 때로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는데 말끝마다 “자식을 해서 뭘 해? 무자식이 상팔자여.” 라고 쑤알거렸다. 나는 그런 지령감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령감은 송장처럼 고즈넉이 누워있었다. 눈이 부옇게 흐리고 물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걸 봐서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했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라 양로원 마당에는 로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있었다. 그중에는 침을 게질게질 흘리는 사람, 중풍을 맞아 손과 발이 비뚤어진 사람, 그릉그릉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면서 간헐적으로 숨을 헐떡이는 사람… 한마디로 숨이 떨꺽 넘어가기만 기다리는, 바람이 불면 금방 꺼져버릴 풍전등화와 같은 가련한 생령들이였다. 그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는 가장 젊고 ‘건강’한 축이였다.

나는 로인들을 피해 담장 밑에 있는 나무그늘을 찾아서 앉았다. 하지만 날씨가 어찌나 찌물쿠는지 몸에서 땀이 비오듯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부채질을 할 거라도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눈길이 구석 쪽에 있는 개굴에 가서 멈췄다. 개굴 앞에서는 양로원에서 키우는 검둥이가 모로 드러누운 채 며칠전에 낳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한 새끼들은 어미젖을 찾아먹겠다고 서로 밀치닥거리며 치렬하게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